우리고장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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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의 인물

변봉금

변봉금은 독립운동으로 체포되었다가 출옥한 동지를 보살피고, 3.1운동이 일어나자 감옥에 수감된 이들의 뒷바라지와 연락책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독립지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거나 그들을 숨겨주기도 하였습니다. 1920년 고향 부산으로 돌아온 변봉금은 박희장과 같이 살았으며, 강홍일·최천택·김범부·이기주 등도 변봉금과 친분이 두터웠다고 합니다.

박중질

박중질은 무관으로 동래현령을 하다가 염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는 박위와 함께 고려조의 복위를 꾀하였으며 최영장군이 이성계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의분을 이기지 못해 수영의 염부들은 선동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고 삼족이 멸하는 화를 입었습니다. 박중질의 넋은 그의 영혼이 깃들었다는 선사바위 앞 최영장군 사당에서 박중질의 넋을 기려왔습니다.

최한복

최한복(1895∼1968)은 수영출신교육가로 국권의 회복을 위하여 거짓으로 신분을 숨기고 가슴속에는 애국이란 비수를 품고 야간학교 (동래읍 동명학교)에서 민족의 2세들에게 이 나라의 소중함과 이 겨레의 자랑스러움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수영의 역사와 정경을 그대로 수록한 「수영유사」를 썼으며, 옛 수영성이 있었던 성안에서 바라본 절경을 노래하였습니다(수영팔경). 또 그는 수영야류를 보존하기 위해 말뚝이 역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박홍

경상좌수영 수사로 와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겁을 먹고 수영성을 버리고 혼자 도망을 갔던 관계로 역사에는 졸장(拙將)으로 남아있습니다. 류성룡이 쓴 징비록(懲毖錄)에는 「경상좌수사 박홍은 왜적의 형세가 대 단한 것을 보고 감히 군사를 내어 싸우지도 못하고 성을 버리고 도망쳤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래서 임진왜란 당시의 경상좌수사 박홍에 대해서는 다른 기록도 이에 따라 적의 대세에 겁을 먹고 도망친 졸장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징비록에는 그럼에도「4월 17일 이른 아침 변방의 급보가 처음으로 조정에 이르렀는데 이는 곧 경상좌수사 박홍의 장계(狀啓)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장계는 지방에 나간 벼슬아치가 임금에게 글로써 올리는 보고를 말합니다. 박홍은 장계를 써서 부하 막료를 시켜 조정에 보낼 수도 있었으나, 그 장계는 박홍이 부산에서 부산성 안에 깃발이 가득한 것을 보고 직접 뛰어가서 임금에게 올린 것으로 보여집니다. 선조 임금이 파천 할 때 박홍이 수행을 한 것으로 보아 한양으로 급보를 알리고는 그곳에서 돌아오지 않고 선조 임금의 파천에 따른 것으로 보여집니다.

사실 박홍은 급변을 알린 후 임지로 돌아왔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휘하의 부산진과 다대포진은 주축으로 경상좌수영을 재건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18일만에 서울까지 치달아 오른 왜군이었고, 적진을 뚫고 내려오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파천하는 임금을 호종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박홍은 도망친 것은 아닌 것이 아닐까요? 박홍의 행위와 징비록의 기록은 뭔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류성룡은 동인(東人)으로 인물의 평에 편견도 없었다고 하니 그 실상을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박홍은 선조임금을 호종하면서 우위대장이 되었다가 임진왜란 다음해인 1593년에 전사했습니다. 어느 전투에서 전사를 했는지 기록을 찾 을 수 없으나, 전사 후 병조참판으로 추증되었습니다. 박홍이 조정에서 좌수영 이전지시와 함께 임진왜란을 맞았기 때문에 그로서는 그렇게 밖에 할길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사실 류성룡은 임란전과 임란 당시의 재상으로 임란을 가장 잘 아는 분이기 때문에 류성룡이 쓴 징비록을 절대적인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징비록만 믿는 오늘날에서는 박홍이 지나친 누명을 쓰고 있는 셈이 됩니다. 박홍에 대해서는 보다 냉철한 고구(考究)가 필요합니다.

정서

고려18대 의종때 충신으로 억울하게 역적으로 몰려 동래로 귀양을 와서 지금의 수영구 망미2동 4-7번지 인근의 수영천변에서 오이를 기르며 살았습니다. 그가 임금을 그리며 지은 유명한 가사인 '정과정곡'이 '악학궤범'에 남아있으며 수영천변에는 그를 기리는 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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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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