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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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졌지만 열매가 피길 바랍니다
  • 작성일 : 2022년 05월 30일
  • 조회수 : 15
  • 작성자 : 기획전략과
아버지가 2년 육종암 투병 생활을 끝으로 떠나시고, 곧이어 그 충격으로 양가 할머니 두 분이 차례로 치매에 걸리셨다. 지역은 다르지만 양가 내외 모두 시골에서 지내고 계셔서 자식들은 애가 타들어갔다. 서로 본인이 모시겠다고 설득하고, 요양병원으로 가자고도 해보고, 아니면 방문 요양보호사 도움을 받자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봐도 양가 할아버지들은 끝까지 당신이 알아서 하시겠다고 고집을 피우셨다. 지금까지 밥 한 번 지은 적 없고, 걸레질 또한 해보신 적이 없는 분들인데 끝까지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겠다며 단호하게 모든 손길을 거부하셨다.

외할머니는 어릴 때 외가에 놀러 가면 딸로 태어났으면 밥값 하라고 일거리를 한가득 안겨주셨던 분이다.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아 그동안 눈길만 피해 다녔다. 친손주와 외손주를 철저하게 나누셨고, 남녀 겸상이 안 되는 가풍이라 나는 늘 안방에서 밥을 먹는 남자 사촌동생들이 부러웠다. 어린 마음에 상처가 점점 깊어져 외가라고 하면 고개부터 가로젓게 되었다. 그렇게나 강경하고 무서웠던 분이 나를 봐도 아무런 눈빛 반응이 없으셨다. 내 아들을 봐도 누군지 모른다. 모든 세상의 추억을 잃으셨다.

어느 날 엄마는 외할머니를 무작정 집으로 모셨다. 본인도 시집살이를 심하게 했기에 며느리들 고생 시키지 말고 딸네집에서 여생 함께 놀자고 했다. 새벽 내내 집에 가고 싶다고 우는 외할머니를 달래느라 엄마는 하루하루 삐쩍 나무 가시가 되어가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게나 아들자식 사랑이 대단하시던 분은 끝내 외삼촌들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지난 3월 14일 하늘로 떠나셨다. 어린 아들 녀석의 두 번째 상복 입은 날이었다.

최근 나 역시 아팠다. 준비하고 있던 모든 일들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고, 날개가 꺾인 채 하루하루 시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우편함에 꽂혀 있던 편지 하나,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이 보낸 것인데 한 장 가득 촘촘한 글씨로 날 위로하는 내용이었다. 훌쩍 커버린 아들 녀석의 사랑한다는 말보다 효능 있는 약이 있을까. 내 슬픔에 빠져 나는 엄마를 챙기지 못했는데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모습이었다.

인디언 호피족은 5월을 '기다리는 달'이라고 한다. 우리네 사람들도 그러한 것 같다. 부모님은 자식들을 기다리고, 자식들도 부모님을 기다린다. 인디언 푸트힐 마이두족은 6월을 '수다 떠는 달'이라고 한다. 기다리지만 말고 함께 수다 떠는 달이 되도록 잠시 지난 슬픔은 고이 접어 마음 한켠에 모시리라.

 전아영(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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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 202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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