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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터줏대감2 수영사적공원 `수영성남문 / 무지개로 남은 수영성남문
  • 작성일 : 2025년 04월 30일
  • 조회수 : 4
  • 작성자 : 기획전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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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수영사적공원이 `공원산'으로 불리던 시절, 아이들은 돌문을 지나며 괜히 숨을 죽이고 재빨리 통과하던 때가 있었다. "나쁜 일을 하면 돌이 떨어져 다친다."라는 이야기를 믿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아이들이 나쁜 일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에 우리는 홍예문을 지날 때마다 조심스레 문 위를 올려다보곤 했다.

한참 지난 뒤 그 문이 경상좌수영의 가장 큰 문인 남문의 홍예 부분이란 사실과 접착제 없이 돌을 쌓아 올려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라워했던 기억이 있다.

과거로 들어가는 문

요즘 수영을 찾는 이들 중엔 홍예문을 지나며 "다른 시대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

쌍무지개처럼 둥근 문을 지나면 커다란 소나무와 수사선정비, 500년의 세월을 품은 푸조나무를 보면 그럴만도 하다. 홍예문은 머릿돌을 중심으로 11개의 돌이 쌍무지개로 늠름하게 버티고 있다. 왼쪽 아래의 홍예기석에는 신해 2월 축이란 글이 보인다. 좌수영성 축성이 1692년에 이루어졌으니 이 문은 1731년 2월에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300년을 견뎌 온 시간의 흔적

경상좌수영 정문으로 사용되었다가 일제강점기에는 학교 교문으로, 1969년도에는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수영사적공원을 지키고 있다.

경상좌수영 남문의 위엄을 상징하는 하마비와 학교 교문으로 사용되었을 때 학교 명패를 달았던 흔적, 문 양쪽에 있는 박견 아래 글자 변화 등이 세월의 기억을 모두 담고 있다. 300년을 견뎌 온 이 문은, 본래의 자리인 경상좌수영성 남문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지역의 터줏대감으로서, 이제는 우리가 함께 지키고 보살펴야 할 문화유산이다. 

전미경(명예기자)



2번째 사진 : 1978년도 /주민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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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 202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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