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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수영구 기네스 ⑩도심지 개간의 역사를 찾다 1963년 7월 발급된 제1호 일반개간허가증
  • 작성일 : 2021년 04월 29일
  • 조회수 : 10
  • 작성자 : 기획감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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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영구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민락동. 그러나 1970년대 중반까지도 민락본동의 경우 80가구 남짓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조용한 동네였다. 변화의 기운이 움트던 60년대 민락동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있다는 소식에 김종수 님(민락동)을 만났다.

"부산시에서 1963년 7월 25일 발급한 일반개간허가증 제1호입니다. 신부산개발계획에 따른 이 지역 첫 사업이라고 할 수 있죠."

온통 한문인, 읽기도 힘든 이 귀한 문서는 어릴 적 선친이 운영하던 백산 동흥농장(현재 광안현대하이페리온) 개발 허가증이다. 공사비, 면적, 준공기간 등 자세한 내용과 함께 `동래구 민락동'이라는 주소가 낯설다. 남구도 아니고, 동래구라니… 말로만 듣던 동래구 시절의 인증샷 제대로 날리는 문서였다.



당시 모습을 짐작케하는 과수원과 방품림

무엇보다 눈길을 끈 것은 지적도와 함께 첨부된 농장배치도. 복숭아, 포도, 감 등 유실수와 방품림 몇 그루를 심는다는 것까지 자세하게 나와 있다. 도심 한가운데에 과수원이 있었다니….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는 이야기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과일 서리하러 다니던 기억이 생생해요."

광안동 토박이 주민의 이야기처럼, 사실 동흥농장은 인근 지역 사람들의 비공식(?) 과일 제공처였다. 김종수 님은 "어릴 적 밤새 과일들이 없어지곤 해서, 아버님이 새벽에 근처 군 부대(33고사포대 A포대) 쓰레기통에서 수박 껍질과 참외 씨 등을 발견하고 호통을 치고 내려온 기억도 난다."라고 이야기 한다. 2000년대 초까지 계속 운영되던 동흥농장은 과수원으로 시작해 정원수 등을 심는 묘목장으로 변화를 거듭했다.

민락동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부산시의 부두지구 정리사업 실시로 피란민촌이 철거되면서 이주민이 민락동으로 유입하고 수영강 하구를 매립, 1969년 이곳에 태창목재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1966년 2월 1일자 부산일보에는 대연∼수영 사이 153만평을 구역정리해 대구만한 도시를 만든다는 신부산건설계획이 실려있다. 이런 변화의 물결 속에 민락동 백산 개발이 시작되었다. 동흥농장은 그 첫 번째 사업인 셈이다.

선친의 뒤를 이어 민락동 발전의 산 증인으로, 남다른 지역사랑으로 숨은 역사 찾기에 앞장서고 있는 김종수 님. 귀한 자료를 선뜻 보여주심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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