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얘기를 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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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1년 03월 02일
- 조회수 : 12
- 작성자 : 기획감사실
녹색 마을버스가 학교 앞을 달린다. 마을과 마을을 잇고 골목골목을 누비는 버스 노선에는 `학교 앞'이라는 단어가 제법 들어있다.
장대골을 지나 호암초등학교와 동아중학교에 다다르자 버스는 급경사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골목 사잇길로 접어드니 "다음 정류장은 수영중학교 뒷길입니다."라는 안내에 이어지는 노래가 어쩐지 예사롭지 않다.
"117을 눌러 줘. 네 얘기를 들려줘. 친구처럼 항상 너의 곁에 있을게. 학교폭력 상담 신고는 117. 부산 경찰이 함께 하겠습니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시리다.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은 교통사고 사망률보다 훨씬 높다. 불우한 가정환경, 체벌, 외모 비하와 왕따, 폭행 등 학교폭력으로 인생을 포기하려던 여러 아이 이야기가 남의 사정만이 아니다.
그동안 내가 만난 아이들도 성격 좋고 공부 잘하고 교육 환경이 좋은 학생만 있는 게 아니다. 새 학년이 되면서 친구가 없거나 또래보다 작아 놀림을 당하면 기가 눌린다. 특히 이사 온 경우 새 학교는 낯설고 불편하다. 성격마저 소심해 먼저 말을 건네지도 못한다. 친구들과 비교하면 조금 눈치 없고 조금 다르게 생겼고 조금 다른 환경에서 살다 보니 적응이 늦었을 뿐이었다.
2021년 새해 안부 문자가 도착했다. 그는 중학교 1학년부터 키가 작고 체격이 왜소하여 은근히 왕따를 당했다. 어눌하게 말 한다고 놀림을 받아 자퇴와 자살까지 생각했던 남학생이다. 3학년이 되자 말을 삼키던 복화술 발음을 없애고 키도 컸지만, 또래 아이들의 인식을 바꿀 수 없었다. 참는 게 능사가 아니라며 억울한 마음을 풀려고 바닥까지 닿아 있는 자존심을 자극해 울게도 해보았다. 괜찮은 사람이 되려면 먼저 인사하자, 기가 눌리면 지는 거니까 거울을 보면서 눈빛에 힘을 실어주자, 싫을 땐 싫다고 분명히 말하자, 정확한 발음을 하자는 내 주문이 힘들어 포기한다는 말을 자주 했던 아이다.
그의 간절한 노력으로 말투가 분명해지기 시작할 즈음 고등학생이 되었다. 180㎝가 넘는 키에 어깨가 떡 벌어진 건장한 외모로 변신하였다. 중학시절의 나쁜 트라우마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비타민을 한 줌 가방에 넣어 학교로 보냈다. 먼저 나누는 법, 먼저 웃고 인사하는 법, 먼저 말 거는 법을 몸에 익혀 차츰 모나지 않는 힘을 갖춘 평범한 학생이 되었다.
어느 날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나중에 군대 갈 때 동반입대 하고픈 친구가 생겼다고. 거룩한 일이었다. 현재 그는 대학생이다. 비대면 수업으로도 친구를 사귀는 활발한 청년이 되었다는 문자를 읽고 저절로 눈물이 났다.
아이 한 명을 제대로 훈육하려면 어른 서른 명 이상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한다. 최근 주목받는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보면서 어른의 역할과 아이의 교육에 대한 설계를 재점검한다. 마을버스에서 울리는 학교폭력 노래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러나 무심히 흐르는 노래도 어른들이 깊은 애정을 가지고 듣는다면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수 있지 않은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언제라도 네 얘기를 들려줘."
남정언(광안1동, 수필가)
장대골을 지나 호암초등학교와 동아중학교에 다다르자 버스는 급경사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골목 사잇길로 접어드니 "다음 정류장은 수영중학교 뒷길입니다."라는 안내에 이어지는 노래가 어쩐지 예사롭지 않다.
"117을 눌러 줘. 네 얘기를 들려줘. 친구처럼 항상 너의 곁에 있을게. 학교폭력 상담 신고는 117. 부산 경찰이 함께 하겠습니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시리다.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은 교통사고 사망률보다 훨씬 높다. 불우한 가정환경, 체벌, 외모 비하와 왕따, 폭행 등 학교폭력으로 인생을 포기하려던 여러 아이 이야기가 남의 사정만이 아니다.
그동안 내가 만난 아이들도 성격 좋고 공부 잘하고 교육 환경이 좋은 학생만 있는 게 아니다. 새 학년이 되면서 친구가 없거나 또래보다 작아 놀림을 당하면 기가 눌린다. 특히 이사 온 경우 새 학교는 낯설고 불편하다. 성격마저 소심해 먼저 말을 건네지도 못한다. 친구들과 비교하면 조금 눈치 없고 조금 다르게 생겼고 조금 다른 환경에서 살다 보니 적응이 늦었을 뿐이었다.
2021년 새해 안부 문자가 도착했다. 그는 중학교 1학년부터 키가 작고 체격이 왜소하여 은근히 왕따를 당했다. 어눌하게 말 한다고 놀림을 받아 자퇴와 자살까지 생각했던 남학생이다. 3학년이 되자 말을 삼키던 복화술 발음을 없애고 키도 컸지만, 또래 아이들의 인식을 바꿀 수 없었다. 참는 게 능사가 아니라며 억울한 마음을 풀려고 바닥까지 닿아 있는 자존심을 자극해 울게도 해보았다. 괜찮은 사람이 되려면 먼저 인사하자, 기가 눌리면 지는 거니까 거울을 보면서 눈빛에 힘을 실어주자, 싫을 땐 싫다고 분명히 말하자, 정확한 발음을 하자는 내 주문이 힘들어 포기한다는 말을 자주 했던 아이다.
그의 간절한 노력으로 말투가 분명해지기 시작할 즈음 고등학생이 되었다. 180㎝가 넘는 키에 어깨가 떡 벌어진 건장한 외모로 변신하였다. 중학시절의 나쁜 트라우마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비타민을 한 줌 가방에 넣어 학교로 보냈다. 먼저 나누는 법, 먼저 웃고 인사하는 법, 먼저 말 거는 법을 몸에 익혀 차츰 모나지 않는 힘을 갖춘 평범한 학생이 되었다.
어느 날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나중에 군대 갈 때 동반입대 하고픈 친구가 생겼다고. 거룩한 일이었다. 현재 그는 대학생이다. 비대면 수업으로도 친구를 사귀는 활발한 청년이 되었다는 문자를 읽고 저절로 눈물이 났다.
아이 한 명을 제대로 훈육하려면 어른 서른 명 이상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한다. 최근 주목받는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보면서 어른의 역할과 아이의 교육에 대한 설계를 재점검한다. 마을버스에서 울리는 학교폭력 노래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그러나 무심히 흐르는 노래도 어른들이 깊은 애정을 가지고 듣는다면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수 있지 않은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언제라도 네 얘기를 들려줘."
남정언(광안1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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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 2021-03-02